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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다은 소설 -음악이 있는 자리(시사문단 등단작)
  • 동다은 소설가
  • 등록 2023-05-30 11:12:45
  • 수정 2023-09-04 09:4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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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문단 소설 등단 작(동다은)

 


                                                  작가 동다은


음악이 있는 자리

 

 1악장


 사방엔 크리스마스 이브를 위한 캐럴이 경쾌한 리듬을 타고 울린다. 서운한 한 해의 끝자락을 붙잡듯 시원스레 흘러내린다. 영혼을 품는 듯 포근한 음악이 구석구석을 헤집고 내 표피 깊숙한 곳에 내리 꽂힌다. 평화롭다 못해 편안한 휴식 같은 전율을 타고 나의 몸을 휘감는다. 주변은 온통 축제가 한창인데 난 등을 돌려 눈물을 훔친다. 남편은 골프 광이다. 푸른 빛 골프채를 보고 있으면 나도 멋진 캐디가 되어 잔디만 무성한 어느 골프장 중앙에 서서 골프를 치고픈 상상을 자주 하곤 한다. 흰 티셔츠 소매 끝자락에 콧물이 질퍽하게 들러붙는다.


목숨줄 하나 겨우 붙잡고 살아 있음이 거추장스럽다. 가방 깊숙이 숨겨 놓은 약 한 봉지를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는다. 씁쓸한 죽음 냄새나는 맛 없는 약이 위를 타고 소장을 거쳐 내 영혼까지 침투한다. 잠시 흔들리는 내 몸을 벽에 기대어 본다. 나의 설 자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는 것이 실감 난다. 힘없는 내 영혼은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힘든 줄타기 중이다. 뒤 두개골이 깨지듯 쑤신다. 몽한 의식이 내 안과 밖에서 흔들린다. 나와 다른 세기의 밖 같은 알 수 없는 것들이 뇌 안에 가득하다. 정신을 집중해도 현실은 나와 다르다. 음악까지 나를 영혼 어디로 몰래 데려가는 듯하다. 언제부터 인지 남편 때문에 그런 밑바닥이 있었다. 


아침이 열린다. 보일 듯 말 듯 검은색 물체들이 스멀스멀 옷을 벗는다. 으스름하게 회색빛으로 점점 흐려진다. 멀리 보이는 교회의 뾰족한 십자가도 선명해진다. 찬 공기의 푸른 맛이 코끝을 시리게 한다. 커피 포트에 물을 올려 수증기를 몽글 몽글 피어나게 한다. 쑥색 빛 짙은 녹차 향이 온몸으로 퍼진다. 잠자던 위장의 세포들이 느닷없는 녹차의 방문에 즐겁게 춤을 춘다. 

 

 남편과 나는 이방인이다. 6시에 기상해 시 의회로 출근해 늦은 자정이 넘어야 퇴근을 한다. 남편은 지역구 시의원이다. 지역 주민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일한 덕에 명성이 자자한 3선 의원 이다. 나 따윈 신경 밖으로 몰아낸 지 오래된 무쇠 인간이다. 두 시간은 무심코 잘 지나가 주었다. <사랑과 영혼>이란 영화를 꼭 함께 구경하고 싶어 약속을 잡았다. 끝내 영화관 앞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골프채의 끝자락이 순간 머리를 강타한 것은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영화관에 오지 않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물었더니 남편은 사정없이 내 머리를 골프채로 후려쳤다. 차갑게 버려진 느낌이 머리를 후비며 시간이 급히 정지한 듯 신경이 놀란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오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밤이다. 그날 밤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밤일지도 모른다. 골프에 머리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마치 그날 밤 심장 뛰는 소리처럼 거칠다. 두만강을 무작정 건널 때의 싸늘함, 모든 것이 죽음으로 정지된 느낌? 얼음이 깨져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을 뒤로 하며 목숨을 건 탈북이었다. 안개 저쪽에서 탈북자를 쫓기 위해 혈안이 된 인민군들의 움직임은 죽음을 교환하는 저승사자였다. 그 싸늘함이 그날 밤의 싸늘함과 비슷할까? 두 느낌이 교차하며 집요한 긴 침묵 속으로 침몰한다. 


 파티를 열어 공개 처형을 하는 나라가 늘 불만이었다. 중국을 호기심 삼아 다녀온 친구의 경험담은 날 들뜨게 했다. 불빛이 북한과 다른 두만강 건너 미지의 세계가 궁금했다. 호화로운 문명을 전하는 친구를 따라 난 중국으로 건너갔다. 금방 비밀은 새어 나갔다. 중국 공안원은 날 감시하기 시작했다. 목숨을 건 도피 생활이 이어졌다. 결국, 공안원의 신고로 다시 북송되었다. 시체가 될 때까지 심한 고문을 받았다. 장난 같은 운명으로 북한 체제와 멀어져 갔다.


비누를 찾아도 비누가 보이지 않는다, 비누 없이도 뽀드득 손의 먼지는 씻기어 간다. 말끔하게--- 어릴 때 엄마가 몽둥이로 채찍질을 해도 잘 씻지 않던 손이다. 무엇이든 씻겨 내지 않으면 더러움이 영혼 구석까지 침투할 것 같다. 정형외과 약을 한 봉지 꺼내 입에 넣는다. 여전히 약은 쓴맛을 낸다. 갑자기 다리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힘든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퇴근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몇 걸음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는데 다리에 맥이 풀리면서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무릎을 망치로 여러 번 때리던 의사는 근육 무력증이란 병명을 진단했다. 뜨거운 여름날 아이스크림을 아무리 먹어도, 바다를 몇 번이나 뛰어들어도 풀리지 않는 불덩이가 가슴을 막고 있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틀었다. 공허한 콘크리트 십 오평 공간이 큰 울림 되어 백 오십 평으로 늘어난다. 오스트리아의 어느 호숫가를 산책하는 착각 속으로 빠져든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적막한 콘크리트 아파트 15평 공간이 낯설다. 닭장 같은 아파트 공간에 갇힌 듯하다. 사각의 딱딱한 구조물이 날 억누르며 숨까지 답답해진다. 그런데도 갇힌 공간을 빠져나가는 것이 두렵다. 이 공간을 빠져나가면 또 다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것 같다. 녹차 한잔을 더 마신다. 최신 디스코 팝으로 음악을 바꿔 몸을 움직인다. 한 방울 땀까지 모두 뺀다.


 누군가가 내 목을 누를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한다. 고독으로 위장한 변장술은 허탈한 내 마음을 채울 수가 없다. 손때 묻은 잡지가 여기저기 방을 뒹군다. 방안엔 먼지가 가득 차 있다. 또 여기를 떠나야 하나?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태국을 거쳐 남한으로 들어왔다. 인신매매로 팔려 갈 위기도 넘겼다. 자유를 찾아온 험난한 여정이었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하나?


 또 음악을 튼다. 음악을 틀고 무의식에 날 던져두면 잠시 비정한 현실을 잊는다. 잔잔한 긴 울림이 있는 G선상의 아리아다. 텅 비어버린 나의 허깨비 같은 영혼 줄 한 가닥을 겨우 잡고 있는 동아줄 같은 음악이다. 목말라 오는 그리움,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야 할 자리가 비워진 허전함, 그 자리가 허허롭다. 복실이가 꼬리를 흔든다. 배가 고픈가 보다. 강아지 밥을 주고 싶지 않다. 내 뒤를 계속 졸졸 따라온다. 내 위장에도 음식을 집어넣는 것이 귀찮다.


 남편을 처음 만난 곳은 동네 놀이터였다. 아카시아 향이 온 동네를 물들이던 5월이었다. 예쁜 내 외모에 반한 남편은 내게 사랑을 구걸했다. 내 예쁜 외모는 남한의 의술로 새로 만들어진 인공 외모다. 남편의 첫인상은 목이 긴 슬픈 사슴을 닮았다. 북에 두고 온 첫사랑을 닮은 느낌이 둘 사일 좁혀 준 것일 뿐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었다. 북한 사투리가 심한 난 속초가 고향이라고 속였다. 얼마 후 북한에서 넘어온 것이 탄로 났고, 간첩일지 모른다며 매몰차게 거부했다. 난 배 속에 아이 때문에 비굴해졌다. 어렴풋한 생명 소중 사상을 접목해 낙태는 금물이었다. 하지만 내 자궁은 아이를 품어내지 못했다. 결혼 두 달 만에 아이는 자동 유산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낭만적 연애도 없이 시작한 결혼 생활이 더 궁색해진다. 폭력 상담소를 거쳐 경찰 고소 사건으로 송치된 이후 남편은 완전 적군으로 돌변했다. 남편은 날 헤칠지 모를 위험인물 1위다. 부엌의 흉기를 몰래 감추어 두는 버릇이 생겼다. 혹, 자는 도중 내 목줄을 따는 일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다. 평화가 사라진 날들이 지속된다. 하루 일과표를 수행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남편의 애견 강아지 복실이가 밥 달라고 깽깽거린다. 최대한 발에 힘을 실어 실컷 차버린다. 내가 맞던 골프채로 남편을 향한 증오의 양만큼 철저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학대시켜본다. 강아진 저쪽 구석으로 몰린 뒤 꼬리를 땅에 끌리도록 내리고 눈을 감는다. 작은 소리로 낑낑거리다가 슬그머니 베란다 뒤쪽으로 도망을 친다. 처절하게 절규 어린 절뚝거림으로 다리를 절며--- 내 영혼의 의식 흐름은 악마들의 위협처럼 완전히 포위되어 간다. 복실이는 멀리서 눈을 흘기고 있다. 남편을 짓이겨 주고 싶은 마음이 또 불현듯 인다. 살려 달라고 파리가 앞발을 싹싹 비비듯 중앙으로 발을 모은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부들부들 떨 때까지 실컷 두들긴다.

 

 

 

2악장

 

 음악은 나의 도피처였다. 지친 삶의 한 모퉁이에 음악이 있는 자리가 좋았다. 사상에 물든 북에서도 내가 기댈 것은 음악밖에 없었다. 마음대로 듣는 것도 아니었다. 음악도 목숨을 걸어야 들었다. 남에선 좋아하는 G선상의 아리아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어 좋다. 바이올린 네 줄 중 G선 하나로만 연주된 곡이다. 외줄 하나로 연주되는 곡치곤 제법 심금을 울린다. 외줄 타기를 하는 내 인생과 비슷한 모양새라 정이 가는 곡이다. 혼란한 맘을 진정시키는 이 곡은 나의 구세주다. 


근육 무력증은 근육 자체나 신경에는 이상이 없으면서 근육이 힘이 약해지는 병으로 자가면역 질환으로 추정한다. 정확한 원인은 불분명하다. 근육이 피로해지면 눈꺼풀도 내려온다. 웃을 때 표정도 애매하고 말하거나 숨 쉬는 그것조차 힘들어지는 병이다.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다. 썩어 문드러진 내 신세가 처량하다. 비정한 현실이 차갑게 외로움으로 자리 잡는다. 남편은 이혼을 요구한다. 예상했던 일이 현실화된다. 또 손을 씻는다. 내 자유의 의지 속에 손을 씻는 일로 안 좋은 기억이 다 씻겨 내려간다면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손을 씻을 것이다. 

 

 초록물고기란 예명을 띄우는 상대에게 괜스레 호기심이 생긴다. 떼를 지어 헤엄치는 물고기가 빨간색도 아닌 초록의 옷을 입고 바다를 자유롭게 거니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눈에 확 들어온다. 초록물고기는 최근 컴퓨터 채팅방에서 처음 접속한 상대남이다. 습관처럼 컴퓨터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정신줄 몇 가닥을 놓은 채 로봇처럼 글자를 찍는다. 손가락 힘이 빠지기 전에 자판에 나의 흔적이라도 남기듯이---컴퓨터 속 채팅방의 언어들이 순서대로 쏟아진다. 채팅방 상대의 끊임없는 물음이 이어진다. 신장이 크고 얼굴이 예쁘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출전시키려고 하는지 인상착의를 아주 구체적으로 물어 온다. 


“물고기 좋아해?”

 밥상에 놓인 황톳빛 잔에서 푸른 녹차 향이 향기롭게 퍼진다. 마시지 않아도 녹차는 이미 내 몸 구석구석을 침투한다. 저쪽에 대한 궁금증이 야릇하게 커진다. 

“난 교향곡 좋아해”

“촌스럽긴---” 

“G선상의 아리아 알아?”

“외줄 하나로 곡을 연주한 곡?”

“공감대가 있군”

“사랑의 하루! 싱그러움이 코끝을 자극하는 아침이네.”

 문자만 보아도 사랑의 하루가 쫙 펼쳐질 것만 같은 착각 속으로 빠져든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싱그러운 문자는 뇌리를 파고든다.

“녹차 마시러 와!”

“커피숍 운영하나?”

“녹차 마시러 오라는 문구는 얘기나 나누자는 뜻이야.”

‘녹차 마시자’라는 대화는 음담패설로 도배되는 채팅방에선 특이한 용어다. 녹차라는 흔하디흔한 문구가 조금씩 가슴에 와 닿는다. 



 얼굴도 보지 못한 저쪽의 소식이 궁금하다. 미지의 세계로 접어들어 길을 묻는 조심성으로 다가간다. 저쪽과 메시지 교환 시간은 내 생활의 활력소다. 문자만 주고받아도 설레는 느낌? 마음의 촛불을 밝혀주는 잔잔한 우윳빛 흔들림. 저쪽 남자는 마술사다. 널브러져 있던 나에게 포근한 손짓을 한다. 남한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북에서 온 나를 소통하려고 먼저 반기진 않았다. 저쪽은 큰 의식의 트임을 열어준다. 어떤 대화라도 막힘이 없고 무슨 얘기라도 경청해 주는 자세가 좋다. 바람이 분다. 허기진 내 사랑의 배고픔! 그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내 가여운 영혼! 그 영혼 위로 살랑살랑 바람이 분다.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내 가슴 가득, 문득 떠올라 생활을 지배하는 이 그리움의 가슴 저림! 잔잔하면서도 폭풍우 치는 바이올린 선율처럼 살금살금 요동친다. 잠자고 있던 내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따사로운 햇살, 청량하게 스쳐오는 감촉이 좋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갈대처럼 살아 움직인다. 첫눈 오면 좋아했던 어린 시절을 연상하게 한다. 수북이 쌓인 눈을 밟으며 밤새 돌아다니던 어린 시절 천진함을 유발한다. 이유도 없는 즐거움으로 한껏 들떠 있던 감동의 마음을 마구 퍼 올린다. 모기만 하던 내 영혼이 제법 커진다. 우울과 번뇌로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생동의 시간으로 바뀌어 간다. 심장의 세포들이 살아 움직인다. 마음이 넓게 환해진다. 혼자 히죽히죽 웃는 버릇도 생겼다. 저쪽을 알고부터 강아지가 조금 예뻐진다. 밥도 잘 주고 쓰다듬어 주었더니 슬슬 피하면서 묘한 표정을 흘린다. 


 음양이 당기는 흡착력으로 난 채팅에 몰두한다. 저쪽의 안부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간다. 소망은 희망이 되고 핑크빛 떨림으로 채워 넣는다. 감미롭고 순수한 묘한 감정을 만들어준 저쪽! 나와는 이미 예정된 운명일지도 모른다. 늘 사랑의 상쾌한 하루로 아침을 열어 내 마음을 동요시킨다. 녹차 마시러 오라는 작은 글귀가 확대되어 건강한 하루가 만들어지고 있다. 오늘따라 음악이 더 감미롭다.

 채팅 사이트를 열자마자 정신줄 몇 가닥 놓은 오십 대 남자가 농을 걸어온다. 초록 물고기는 채팅방에 등장하지 않는다. 요즘은 녹차를 혼자 마시나 보다. 저쪽은 일주일 째 문구를 띄우지 않는다. 매일 녹차 마시자고 유혹하더니 갑자기 연락이 없다. 시름시름 삶의 의욕을 잃는다. 밥맛도 잃어가고 웃음도 사라진다. 장독대에 정안수 떠놓고 답이 오기만을 공들여 기도한다. 그래도 또 답이 없다. 손때 묻은 오디오에 G선상의 아리아 테이프를 틀어놓고 먼 곳만 허허롭게 바라본다. 그리움은 봇물 되어 뻥 뚫린 맘 달랠 길 없다. 

 

 초록 물고기가 나를 만나러 커피숍으로 온다. 10일째 소식 없던 저쪽에게 만남을 제의한 것은 내 쪽이다. 한 시간 동안 구걸하듯 겨우 만날 날을 협상했다. 원두커피의 검은 냄새는 부푼 나의 가슴을 더 들뜨게 한다. 밖의 차가움을 뒤로하고 따스함이 날 감싼다. 교향곡도 우리의 만남을 환영한다. 거울을 꺼내 얼굴 화장을 확인한다. 화장발 안의 몰래 감추어진 기미들이 밖으로 나오고 싶어 안달한다. 내 치부의 모든 일이 완벽하게 감추어지는 동안 악몽들은 다 잊어버린 듯 평화의 시간이다. 살짝 입 언저리가 위로 올라간다. 약속 시각이 조금 지나자 한 여자가 들어선다. 내 쪽으로 오지 않기를 바란다. 다행히 나를 지나치며 저쪽 자리로 간다. 남자는 삼십 분이 더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이 타기 시작한다. 난 두 시간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 자세가 되어 있다. 


사십 분이 흐른다. 청회색 칙칙한 색깔의 스님 옷을 아무렇게나 걸친 남자가 내 앞에 선다. 남자가 다가오자 비릿한 소금 냄새가 확 풍긴다. 양말을 빨지 않았는지 무좀 썩는 냄새까지 진동한다. 머리도 정리되지 않은 엉클어진 모습 그대로이다. 남자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남자는 언제 준비했는지 빨간 장미꽃 다발을 내 손에 건네준다. 한동안 긴 침묵이 흐른다. 초록 물고기에게 근사한 외형을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저쪽의 얼굴은 심한 피부의 화상 자국으로 일그러져 있다. 그리고 잠바 사이로 빠져나와 있어야 할 한쪽 팔이 없다. 없는 자의 궁핍함이 전체적으로 확 풍긴다. 난 말을 짧게 했다. 긴 수다를 떨면 놀란 마음이 전달 될 수도 있다. 저쪽은 침울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씻기지도 않을 흉한 얼굴이 영화 속 괴물 같다. 난 추워도 춥단 말도 못 하고 애써 웃음만 지었다. 만난 지 삼십 분이 지나고 남자는 어색한지 서둘러 자리를 뜬다. 


 남자를 보낸 후 장미 다발을 쓰레기통에 짓이겨 버렸다. 장미는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싫은지 몇 송이는 삐죽 튀어나온다. 다시 장미 한 송이도 보이지 않게 쑥 넣어 버린다. 난 수돗가를 찾았다. 수돗물로 어김없이 세차게 손을 씻었다. 화장발로 감추어진 얼굴까지 박박 씻는다. 초록 물고기의 온몸도 씻겨주고 싶은 맘이 순간 든다. 너무 자주 씻은 손은 지진 난 땅처럼 심하게 균열을 보인다. 더 손을 씻다가 결국 피가 날 것이다. 이젠 손을 씻을 수도 없다. 지구 끝까지 버려진 내 영혼을 무조건 받아 준 초록 물고기! 그런데 난 저쪽의 얼굴을 본 이후 컴퓨터를 닫아버렸다. 다시는 채팅을 하지 않을 것이다. 흉측한 모습이다. 냄새까지 소름 돋는다. 의식적으로 생각을 지워야 한다. 녹차가 마시고 싶어도 꾹 참아야 한다.

 

 복실이 강아지가 보이지 않는다. 강아지 밥을 언제 챙겼는지 기억이 안 난다. 배고파 밥 찾으러 나갔나 보다. 며칠이 지나도 강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 복실이의 실종은 두려움을 가중시킨다. 배고파하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어린다. 학대당하던 그 슬픈 모습을 떠올리자 눈물이 고인다. 나를 노려보던 얼굴이 잠잘 때면 더 확대되어 떠오른다. 불면의 밤이 지속된다. 복실이의 슬픈 얼굴과 초록 물고기의 어눌한 얼굴이 겹쳐진다.


 문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음식을 위에 넣어 주지 않으니 속이 쓰리다. 손과 발이 축 늘어지듯 힘이 없어진다. 근육무력증이 때를 만난 듯 활개를 친다. -녹차 마시러 와요- 라는 문구가 맴맴 돈다. 그 문구 위로 화상으로 일그러진 초록 물고기가 금방 자리 잡는다. 접자. 생각하지 말자. 내 머릿속은 온통 쓰레기로 가득한 휴지통이다. 초록물고기를 밀어낼수록 텅 비어버린 공허감! 난 다시 예전의 잿빛 세상으로 침몰한다. 비가 내린다. 내 마음에도 세찬 비가 내린다. 따뜻했던 촛불이 바람에 꺼지려 한다. 이대로 꺼지면 영원한 침몰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무의식적으로 가슴 뭉클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그리움의 한 가운데에 일그러진 반쪽 얼굴이 자리를 튼다. 나가라고 발길질을 한다. 세게 밀어 본다. 그 얼굴은 그 자리가 좋은지 나가질 않는다. 너무 오랫동안 내 그리움의 둥지를 서성인 그림자. 미워하려 해도 미워지지 않고,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긴 그림자가 그 자리에 누워 있다. 밀어낼수록 가련한 초록 물고기는 선명하게 그리움의 똬리를 튼다. 


 씻지도 않는 저쪽의 얼굴이 비 온 뒤 무지개처럼 상쾌하게 웃고 있다. 기미 전체를 다 감춘 내 화장발 얼굴보다 더 화사하게--- 작은 시간 동안 내 좁은 자리에 너무나 넓게 퍼져버린 초록 물고기의 존재! 저쪽은 나보다 풍요롭다. 채워지는 가득함, 숭고한 정신적 떨림, 저쪽과 만남은 편안한 휴식이었다. 그것이 행복이었다. 녹차의 풋풋함, 물고기의 초록색이 빙빙 주위를 돈다. 녹차 마시러 오라던 문구가 내 의식 전체를 뒤덮는다. 모든 아픔의 장막을 걷어내고 가슴 중앙부에 자리 잡는다. 할퀴어지고 찢어진 내 못난 영혼을 위로받고 싶다.

 

 스마트폰이 울린다. 컬러링 음악인 교향곡 G선상의 아리아다. 내 삶이 단 한 줄의 현으로 연주되는 것처럼 G선상의 아리아 곡이 방안 가득 채워진다. 초록 물고기의 한쪽 팔에 흐물어져 가는 나를 기대고 싶은 작은 소망이 나풀나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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